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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넷 밀러 - 카포티 (2005)취미/영화 2025. 12. 21. 15:13

문학적 뱀파이어
베넷 밀러의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다. 1959년 11월, 카포티는 캔자스에서 한 농가 가족 네 명이 총으로 살해당했다는 뉴스를 본다. 그는 뉴요커 편집자 윌리엄 쇼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건을 기사로 쓰고 싶다고 말한다. 나중에 카포티는 만약 이 충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았다면 캔자스 홀콤에 들르지 않고 "지옥에서 나온 박쥐처럼" 그냥 지나쳤을 거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시골 마을이 비극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범인을 잡든 말든 상관없어요"라고 수사관에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명의 떠돌이 페리 스미스와 리처드 히콕이 체포되면서 모든 예상이 뒤바뀌게 된다.
카포티는 그들을 알아가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이야기는 그를 부자로 만들고 유명하게 만들지만 결국 파괴한다. 그의 논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카포티는 이 경험으로 정서적으로 황폐해졌고 그의 죽음을 앞당겼다. 영화는 카포티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6년을 다룬다. 그가 살인자들, 경찰들, 피해자 가족의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프로젝트는 점점 깊이를 더해간다. 하지만 취재의 핵심에는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있다. 그는 두 명의 살인자 신뢰를 얻고 페리 스미스와 사랑에 빠진다. 동시에 그들이 죽어야만 책의 결말을 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를 빼놓고 이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카포티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카포티 그 자체의 모습을 연기한다. 특이한 겉모습 뒤에 큰 지성과 깊은 상처를 숨긴 남자를 연기하는 호프만의 몸짓과 말투는 정확하고 섬뜩하다. 안경을 올리는 모습, 팔짱 끼는 모습, 우는 모습, 윗입술을 움찔거리는 것까지 모든 디테일이 살아 있다. 호프만은 덩치가 큰 배우지만 몸짓만으로 작고 연약한 남자처럼 보이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베일처럼 23kg을 빼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와 표정과 몸짓만으로 키 160cm의 남자를 믿게 만들었다.
카포티는 위 사건을 취재하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작가로서 자리잡았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썼고 토크쇼의 인기 게스트이기도 하다. 작은 체구에 큰 자아를 가졌고 말투와 외모가 특이해서 어디를 가든 아웃사이더다. 캔자스의 한 소녀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안다고 생각했어요. 내 방식 때문에, 내 말하는 방식 때문에." 하지만 그는 맨해튼과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가 평범한 중서부 사람들과 두 명의 비참하고 무자비한 살인자들에 대한 위대한 책을 썼다. 트루먼 카포티보다 페리 스미스와 대척점에 놓인 사람이 있을까? 둘은 정반대에 서있지만 ㅁ두 어린 시절 학대받고 이곳저곳 떠돌았고, 차갑고 먼 어머니를 둔 문제가 있었고, 비밀스러운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페리와 나는 같은 집에서 자랐어. 어느 날 그는 뒷문으로 나가고 나는 앞문으로 나갔지"라고 하퍼 리에게 말한다.
작가와 소재
영화는 작가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 그리고 이야기가 작가를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카포티는 사건 담당 수사관 앨빈 듀이를 설득한다. 앨빈과 메리 부부의 부엌에서 저녁을 먹으며 존 휴스턴과 험프리 보가트 이야기로 그들을 즐겁게 한다. 이야기하면서 그는 인류학자같이 그들의 집을 관찰한다. 지역 장의사를 설득해 훼손된 클러터 가족의 시신을 본다. 나중에 페리 스미스는 그에게 말한다. "아버지 허브 클러터를 좋아했어요. 정말 좋고 온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의 목을 그을 때까지도요."
캔자스 여행에는 어린 시절 친구 하퍼 리를 데리고 간다. 캐서린 키너가 연기하는 리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여성이다. 카포티가 책을 끝내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 사이 리는 『앵무새 죽이기』를 출판하고 영화로 팔고 그레고리 펙과 함께 세계 시사회에 참석한다. 리는 트루먼이 페리를 아끼면서도 책을 위해 그를 착취한다는 걸 분명히 본다. "당신은 그를 존중해?" 리가 묻는다. 카포티는 방어적으로 답한다. "그는 금광이야."
도덕적 붕괴
『카포티』는 위대한 성취를 위해 자기 존중을 포기해야 하는 남자에 대한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영화다. 대부분의 전기 영화는 인물을 미화하거나 비난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카포티의 도덕적 붕괴를 무자비하게 바라본다. 카포티는 페리를 진심으로 아끼는 동시에 그가 죽기를 기다린다. 이 모순이 영화의 핵심이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곳을 떠나면 세상은 당신을 괴물로 볼 거예요.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아요."
그는 페리와 리처드를 설득해 살인 사건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게 한다. 가슴 아픈 세부 사항들을 듣는다. 그들이 "소년을 쏘기 위해 그의 머리 아래 다른 베개를 놓았다"는 것 같은. 카포티는 그들의 항소를 도울 것이고 다른 변호사를 찾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배신한다. 항소가 받아들여지면 책을 끝낼 수 없다. "만약 항소가 받아들여지면 완전히 신경쇠약에 걸릴지도 몰라"라고 하퍼 리에게 말한다. 그들이 1965년 4월 14일 교수형을 당한 후 하퍼에게 말한다. "내가 그들을 살릴 방법은 없었어." 하퍼가 대답한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실 당신은 원하지 않았잖아."
얼음 같은 심장
카포티가 쓴 책의 제목인 『인 콜드 블러드』는 원래 젊은 살인자들의 냉담한 태도를 의미했다. 하지만 베넷 밀러는 그것을 뒤집는다.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있지만 카포티의 작업 방식은 차갑고 냉혹하다. 지역 경찰과 마을 사람들을 여성스럽고 어린애 같은 태도로 무장 해제시키면서 동시에 좋은 이야기가 될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는 감옥에 있는 페리 스미스를 무자비하게 이용했다. 인터뷰하고, 친구가 되고, 본질적으로 유혹했다. 비싼 변호사로 사형 집행 유예를 사주고 이야기를 얻은 후에는 법적 도움을 끊어서 스미스의 교수형이 깔끔한 결말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레이엄 그린은 작가가 되려면 마음속에 얼음 조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포티는 남극 대륙의 절반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영화는 카포티를 미화하지 않는다. 그가 가진 연민과 잔인함, 천재성과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호프만의 카포티는 가장 훌륭하게도 비호감적인 인물이다. 징징대고, 자기 중심적이고, 연인의 필요를 수용하지 않는다. 하퍼 리가 준 도움에 감사하지 않고 그녀의 성공을 시샘한다. 하지만 그는 예술에 대한 열정적이고 진실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이 한 프로젝트에 몇 년을 쏟아붓는다. 단순한 저널리스트였다면 훨씬 전에 흥미나 체력을 잃었을 것이다.
대가
"절대 이걸 극복하지 못할 거야." 카포티는 리에게 어린아이 파자마를 입고서 이렇게 징징댄다. 아마 그가 극복하지 못한 건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베넷 밀러는 그가 옳았다고 넌지시 암시한다. 『인 콜드 블러드』는 카포티를 최고의 작가로 만드는 동시에 그의 작가 생명을 끝낸 책이다. 그는 다른 실질적인 소설을 완성할 수 없었고 1984년 심장마비로 죽을 때까지 헤매기만 했다. 한편 하퍼 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두 번째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다. 카포티는 자신의 위대한 책을 위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희생시켰다. 자기 자신도 희생시킨 데는 일종의 진실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영화는 조용하고 절제되어 있다. 배경음악도 거의 없고 화려한 편집도 없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끝난 후 오래도록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예술을 위해 작가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진실을 기록하는 일이 왜 때로는 잔인할 수밖에 없는지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호프만의 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이다. 차분한 톤의 심리극을 좋아한다면,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한 번쯤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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