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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 캉탕책/독서 2026. 3. 27. 22:07
들어가며이승우의 작품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이곳에서 저곳을 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캉탕』도 예외가 아니다. 주인공 한중수는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 J에게 되도록 아무런 연고도 없는 먼 곳으로 떠나보라는 조언을 받는다. 이따금씩 머릿속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 때문이다. 어느날 이 사이렌 소리가 커져 발표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지독한 두통과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자 J는 주소가 적힌 쪽지 하나를 건넨다. 그곳이 캉탕이다. 『캉탕』에 대한 내 첫 인상은 모비딕과 세이렌 이야기의 현대식 번역을 통해 시간과 죄에 대해 탐구한 책이라는 느낌이었다. 세상의 끝이자 시작캉탕은 웬만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대서양의 작은 항구도시다. 그곳 사람들은 캉탕을 '세상의 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구는 둥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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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 타츠키 - 체인소 맨취미/만화·애니 2026. 3. 25. 11:16
들어가며요즘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둘러싼 논쟁들을 보면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다. 체인소 맨처럼 화제가 된 작품일수록 사람들의 평이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명작이다", "과대평가됐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이런 식의 평가들이 난무한다. 내 주변은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플롯 구멍이 너무 많다"는 불만들이 대다수였다. 처음에는 취향 차이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나에게 잘 맞았던 이유가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체인소 맨』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다른 접근 방식부정적인 의견 중 대표적인 몇 가지만 추리자면 앞서 말했듯 능력이나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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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르베 - 자살책/독서 2026. 3. 24. 14:40
원고를 넘긴 지 10일 후에두아르 르베는 2007년 10월, 『자살』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지 정확히 10일 후에 42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만큼 책의 모든 문장은 이중적인 의미로 읽혔고 모든 페이지는 유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살』은 화자가 20년 전에 자살한 친구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쓰여 있다. 2인칭 화법으로, "당신은"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8월의 어느 토요일, 당신은 테니스 복장을 하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정원 한가운데서 당신은 집에 라켓을 두고 왔다고 말한다. 당신은 라켓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만, 현관 찬장으로 가는 대신 지하실로 내려간다. 아내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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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 식물들의 사생활책/독서 2026. 3. 24. 13:28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작품을 읽기 전이라면 뒤로가기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들어가며최근 『생의 이면』을 다시 읽고 난 뒤부터 이승우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연달아 읽고 있는 중이다. 『캉탕』, 『미궁에 대한 추측』, 『한낮의 시선』을 읽었고 이번에는 『식물들의 사생활』 차례가 되었다. 책 날개를 보니 르 클레지오가 이승우를 노벨 문학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꼽으면서 이 작품을 "어떻게 읽어도 고갈되지 않는 무궁무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스릴러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이 계속 이어졌다. 무슨 일이 언제든 벌어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자극적인 소재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궁금증이 커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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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 생의 이면책/독서 2026. 3. 3. 11:10
들어가며1초에도 수백만 개씩 쏟아져 나오는 방대한 문화 콘텐츠. 1인 미디어 시대. 우리는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창작자라기보다는 소비자의 성향에 가깝다. 책을 읽고, 만화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함을 느낀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창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소비자라고 할지라도 나만의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한 달가량 미뤄두었던 짧은 독서 기록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생의 이면』이었다. 그 이후로 『캉탕』, 『식물들의 사생활』, 『미궁에 대한 추측』, 『한낮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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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 치치새가 사는 숲책/독서 2026. 2. 26. 08:46
들어가며장진영 작가의 장편소설 『치치새가 사는 숲』. 친구가 재미있게 읽었다며 권해서 그 날 바로 이북으로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였고 그날 두어번 정도에 나누어서 다 읽으려고 했지만 중반부터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루밍 성범죄를 다룬 소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디테일하고 과감한 묘사보다도 화자의 태도, 행동, 감정이 나에게 자꾸만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범죄? 사랑?차장이 성범죄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성인 남성이 미성년 여학생에게 접근하고, 이름을 지어주고, 특별한 존재인 척 행동한다. 교과서적인 그루밍이다. 그런데 주인공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꼈다. 차장이 재판을 받게 되자 처벌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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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 그랜 토리노 (2009)취미/영화 2026. 2. 25. 15:19
올드 더티 해리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는 당시 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일흔여덟 살의 나이에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지친 듯 낮게 갈라진 쉰 목소리에 거부할 수 없는 위엄과 힘을 담았다.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괴팍하고 단호한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 그 자체였다. 40여 년 전 서슬 퍼렇게 매그넘 44를 겨누던 해리 캘러핸은 세상에 몸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늙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사는 월트는 자신이 자동차 회사에 다닐 때 생산했던 1972년산 그랜 토리노를 애지중지한다. 갱단의 협박에 못 이긴 이웃집 소년 타오는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 월트에게 들키고 달아난다. 차 훔치기에 실패한 타오를 갱단이 강제로 끌어가는 과정에서 월트의 마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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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 남한산성 (2017)취미/영화 2025. 12. 29. 20:28
정의와 정의의 싸움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김훈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636년 겨울, 청나라 군대가 조선을 침략한다.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식량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혹독한 추위 속에 갇혀버린다. 영화는 이 47일간의 포위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극 영화 하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화려한 전투 장면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신 신하들의 치열한 설전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영화는 진행되는 내내 주화파와 척화파가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청과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맞선다. 둘 다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은 같지만 생각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