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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 식물들의 사생활책/독서 2026. 3. 2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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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최근 『생의 이면』을 다시 읽고 난 뒤부터 이승우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연달아 읽고 있는 중이다. 『캉탕』, 『미궁에 대한 추측』, 『한낮의 시선』을 읽었고 이번에는 『식물들의 사생활』 차례가 되었다. 책 날개를 보니 르 클레지오가 이승우를 노벨 문학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꼽으면서 이 작품을 "어떻게 읽어도 고갈되지 않는 무궁무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스릴러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이 계속 이어졌다. 무슨 일이 언제든 벌어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자극적인 소재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궁금증이 커졌고 나도 그 흐름에 휩쓸려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다소 자극적인 소재
여느때와 같이 별다른 사전 전보 없이 독서를 시작하면서 이 책이 결과적으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책의 2/3 지점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초반에는 불편하게 이어지는 서사가 계속해서 몰아칠 뿐이었다. 다리가 없는 아들을 업고 아들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주기 위해 연꽃시장이라 불리는 창녀촌을 드나드는 어머니. 그 어머니를 대신해 모텔에 방을 잡아 형을 데려다 놓고 그 방으로 창녀를 사서 넣어주는 동생. 형의 애인을 사랑한 동생. 형부와 처제 간의 부적절한 관계. 유부남과의 사랑을 지고지순하게 평생 기억하고 사는 어머니. 그 어머니를 평생 외골수로 사랑한 아버지. 막장 드라마 같으면서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다.
민낯을 들이미는 작품
요즘 이승우 작가의 글에 푹 빠져 몇 권째 폭주하고 있는 상황인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작품은 이승우 작가 특유의 언어 유희가 상대적으로 적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이내 흐름을 놓치고 마는 아슬아슬한 묘미가 약간 줄었다. 그럼에도 가독성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생의 이면』이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주인공 박부길이 갖고 있는 인간적 약점을 드러낸 데 비해 이 작품은 시작부터 대놓고 민낯을 나에게 들이미는 탓에 다소 당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당황스러움이 나를 작품 끝까지 이끌어 주었다.
세 그루의 나무
책을 덮고 나서 머릿속으로 강렬하게 남은 것은 나무들이었다. 형이 산책을 나가던 곳에 있던 소나무와 때죽나무, 아버지가 매일 돌보는 식물, 어머니가 갔던 남천의 야자나무와 숲, 바다를 품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설고 무서워 보일 수 있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신비한 공간인 모습으로 말이다. 사실 나는 평소에도 종종 이 세상의 주인은 어쩌면 '인간'이 아니라 '나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비록 움직이지 못하지만 모든 곳의 생명의 근원에는 '나무'가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남아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작품의 전반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모습이 무엇보다 강하게 남아있다.
엉켜있는 소나무와 때죽나무
작가는 산문집 『소설을 살다』에서 이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던 홍유릉의 소나무와 때죽나무 이야기를 했다. 작가가 30대 시절을 보낸 남양주 아파트에서 걸어서 2, 3분 거리에 조선의 마지막 두 왕과 왕비의 묘인 홍유릉이 있었고, 그곳을 산책하던 중 마치 남자와 여자가 알몸으로 엉켜있는 것 같은 소나무와 때죽나무를 발견하고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매끈한 나무줄기가 날씬한 여자의 나신을 연상시켜." "정말 황홀한 것은 흰 꽃이지. 5월이니까 조금 있으면 필 거야.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때죽나무의 흰 꽃들은 은종같아. 그 아래 서 있으면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지."
엉켜있는 소나무와 때죽나무는 사랑의 원초적 욕망을 떠올린다. 우현이 이 나무들을 보며 괴로워한 것은 과거의 연인 순미가 생각나기도 했겠지만, 불구가 된 몸에도 주체할 수 없는 육욕을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야자나무
이와는 대비되는 느낌으로 상징성이 아주 큰 나무 한 그루가 또 등장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기후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야자나무이다.
"예컨대 두 사람의 숨찬 사랑처럼 여겨지는 것. 사랑을 걸었다고 했다. 그들의 사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그 나무에도 전이시켰던 거라고 했다."
나무는 기후가 다르고 토양이 다른 이국의 땅에 싹을 틔우기 위해 흙 속에서 몇 년을 버텼다. 그냥 버틴 것이 아니라 적응하고 참고 기다렸다. 이 땅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체질을 획득할 때까지. 다른 기후와 토양임에도 불구하고 인내하고 적응하여 놀라운 결실을 맺은 야자나무는 사랑의 험난한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 과정을 견딘 후에 우뚝 솟은 나무는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30년간 서로를 잊지 못하는 남과 여, 30년을 이어온 외사랑 같이.
물푸레나무
그리고 사람의 접근이 금지된 저 너머에 있는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등장한다.
"나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하늘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떠받치고 있는, 태고의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이미 보아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형이 숲속으로 들어가서 보고 싶다고 했던 그 거대한 물푸레나무는 그 숲속 어딘가에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등장인물들 중 나무와 가장 비슷한 인물이다. 오랜 세월 버텨온 물푸레나무를 닮았다. 저 너머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태고적 나무라는데 아버지도 집안에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음이 한평생 다른 남자에게 가 있는 아내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불구의 아들조차 가슴에 품고 굳건히 버티고 있는 물푸레나무 같은 아버지.
나무가 되고 싶다는 것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내가 품에 안자 우현이는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흘리게 내버려두었다. 눈물이 그를 정화하기를 기대했다. 그의 슬픔과 고통과 갈망이 눈물과 함께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를... 눈물이 잦아들자 우현이 말했다. 나무가 되고 싶어요."
자신의 존재를 견디지 못해 나무가 되고 싶다는 형 우현을 보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생각났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이 2000년이니 어쩌면 한강 작가가 이 책을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고요한 나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정말 어떤 것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저 나무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내면도 정말 그렇게 고요할까. 고요한 사람의 내면의 수군거림 같은 것을 제가 들은 거예요." 나무가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욕망을 안에 가진 채로 그 고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내적인,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그 힘을 길러야 되는 것일까. 작가는 그 생각을 신화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상선약수
노자의 상선약수 정신에는 고정된 체계나 구조에 대한 초월적 저항을 시도하는 '식물성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현실적인 장애물을 우회하지만 끝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식물성 욕망'을 다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이 소설은 상선약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식물적 속성의 특징은 정면대결이 아닌 물러섬과 우회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식물성 욕망이 지닌 더 핵심적인 특징은 물러섬과 우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러서고 우회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지향성에 있다. 자신을 가로막는 상대를 파괴하고 현실적인 장애를 돌파하는 것도, 현실적인 장애에 굴복하거나 스스로 파괴당하는 것도 식물적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적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더 낮은 곳을 찾아 우회하거나, 차고 넘칠 때까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물의 완강한 온화함으로 집약되는 노자의 상선약수 정신은 식물적 속성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
파라다이스 남천
두 형제인 '기현'과 '우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갈등과 뜻하지 않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어느 순간 '어머니'의 시점으로 그리고 또다시 '아버지'의 시점으로, 다시 '기현'이 바라보는 '우현'의 시점으로 변해가며 '사랑'이라는, 어쩌면 '삶'이라는 것의 숭고함과 깊은 성찰까지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남천'이라는 가상의 지명이 등장한다. '남천'은 우현과 기현 형제의 어머니가 첫사랑 남자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낸 곳이며, 형제의 아버지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리고 '남천'엔 우현과 기현의 그녀 순미가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겨울이었는데도 남천은 따뜻했다...여긴 천국이야, 지상이 아니지...사람들에게 여긴 없는 곳이지. 그러니까 천국이고."
'남천'은 이들 모두에게 성소이며 파라다이스이다.
침묵 속의 사랑
나머지 하나로 강렬하게 남은 것은, 책의 마지막 후반부에 보이는 가족들의 저녁 식사 자리이다. 가족 서로 간에 사랑도 없이, 마치 가족으로 이루어졌으니 어쩔 수 없이 사는 것 같은 모습과는 다르게 그 침묵 속에는 그들만의 사랑이 있었다. 어쩌면 그 어떤 가족보다 숭고한 사랑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현'의 모습에서 계속해서 기현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고, '우현'의 모습에서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결되면서 각자의 가슴속 깊은 곳까지 바라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치며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자들과 좀 더 직접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나에게는 성공적이었다. 등장인물이나 스토리 전개가 처음에는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밑줄 친 부분을 다시 읽으며 책 내용을 정리해보고 나니 그 말이 머쓱해졌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사랑에 대한 성찰은, 그것이 최상의 수준으로 이루어질 때,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2000년에 출간된 이 소설이 지금도 무게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조건이 변하지 않았거나 더 악화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무들을 예사롭게 바라보지 않을 것 같다. '너는 어떤 영혼이었니?'라고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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