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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지모토 타츠키 - 체인소 맨
    취미/만화·애니 2026. 3. 25. 11:16

     

    후지모토 타츠키의 체인소 맨 1권 표지. 알라딘에서 이북으로 구매하여 읽었다.

    들어가며

    요즘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둘러싼 논쟁들을 보면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다. 체인소 맨처럼 화제가 된 작품일수록 사람들의 평이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명작이다", "과대평가됐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이런 식의 평가들이 난무한다. 내 주변은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플롯 구멍이 너무 많다"는 불만들이 대다수였다. 처음에는 취향 차이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나에게 잘 맞았던 이유가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체인소 맨』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다른 접근 방식

    부정적인 의견 중 대표적인 몇 가지만 추리자면 앞서 말했듯 능력이나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세계관 설정 자체가 약하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건,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작품을 접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진격의 거인, 헌터x헌터, 주술회전 같은 작품들에 익숙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정교한 세계관, 복잡한 능력 시스템, 치밀하게 짜인 플롯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체인소 맨을 보면서 "뭔가 빠졌다"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체인소 맨은 애초에 위에서 나열했던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겉으로는 배틀 소년만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캐릭터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이다. 배틀 소년만화적인 요소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타츠키는 덴지가 자신과 주변 세계를 이해해 가는 과정, 아키가 삶의 가치를 깨닫는 여정을 그리는 것에 집중했다. 이 지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체인소 맨은 영원히 "어딘가 부족한 만화"로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체인소 맨이 독자가 스스로 추론하고, 행간을 읽고, 보이는 것 너머를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히메노와 계약한 유령의 악마 손이 왜 덴지의 립코드를 당겼는지, 포치타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마키마의 능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 이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명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모든 게 화면 안에 있고 단지 독자가 직접, 능동적으로 찾아야 할 뿐이다. 분명 이게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건너뛰었다고 느끼기도 할 것이고.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답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보여주기와 말하지 않기

    체인소 맨의 가장 큰 특징은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점이다. 다른 소년만화들을 생각해 보자. 캐릭터들은 싸우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설명한다. "내 능력은 이러이러한 조건에서 이렇게 작동하며, 약점은 이것이고..." 이런 식이다. 관객은 편안하게 앉아서 정보를 받아먹으면 된다. 하지만 체인소 맨은 다르다. 사와타리는 자기 능력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뱀을 소환하고, 그 뱀이 유령을 먹고, 나중에 유령을 꺼낸다. 우리는 그걸 보고 "아, 악마를 먹으면 그 악마의 능력을 쓸 수 있구나"라고 추론한다.
     
    애니메이션을 봤다면 아키의 2분짜리 아침 루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다른 만화였다면 내면 독백으로 가득 찼을 장면이다. "난 복수를 위해 살아왔지만, 요즘엔 덴지와 파워 같은 가족이 생겼어. 하지만 복수를 포기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체인소 맨은 그냥 보여준다. 아키가 아침을 준비하고, 덴지와 파워를 깨우고,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대사는 최소한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아키가 변했다는 걸. 그에게 지킬 것이 생겼다는 걸.
     
    이런 접근은 독자를 신뢰한다는 의미다. 모든 걸 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문제는 너무 많은 만화가 독자를 과소평가하는 데 익숙해져서, 정작 이런 신뢰를 받으면 당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샌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정보에 의존하게 되었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캐릭터가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꺼내서 모든 걸 설명하는 장면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체인소 맨처럼 절제된 서사를 마주하면 "뭔가 빠졌다"라고 느낀다.
     

    캐릭터 중심의 서사

    체인소 맨이 짧은 분량 안에 완결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후지모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만약 체인소 맨이 세계관 설정이나 불필요한 떡밥에 집중했다면, 이렇게 효율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총의 악마 조각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을 자세히 그렸다면 어땠을까? 분명 멋있었겠지만, 덴지가 공감 능력을 이해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아키가 살아갈 이유를 찾는 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체인소 맨의 서사 초점은 철저하게 캐릭터에 맞춰져 있다. 콴시와 그녀의 하렘, 삼 형제 - 이들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지만, 후지모토는 그들의 과거를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왜? 그게 덴지의 여정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콴시는 "무지한 것이 행복한 것이다"라는 주제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 이상의 배경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서사를 늘어지게만 만들 뿐이다.
     
    이런 접근방식을 이해하면, 체인소 맨이 왜 다른 소년만화들과 다른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소년만화는 세계를 탐험하는 수단으로 캐릭터를 사용한다. 원피스를 생각해 보자. 루피와 그의 동료들은 세계를 여행하며 그랜드 라인의 비밀을 밝혀낸다. 세계관이 이야기의 핵심이고, 캐릭터는 그걸 탐험하는 도구다. 하지만 체인소 맨은 정반대다. 캐릭터를 탐험하는 수단으로써의 세계다. 악마, 악마 사냥꾼, 계약 - 이 모든 설정은 덴지, 아키, 파워라는 캐릭터들을 깊이 파고들기 위한 배경일뿐이다.
     

    소년만화의 전복

    체인소 맨은 소년만화의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뒤집는다. 주인공은 거창한 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덴지가 원하는 건 가슴 만지기, 맛있는 음식 먹기, 편안하게 살기 같은 소박한 욕망들이다. 상당히 솔직하다. 16살 소년이 실제로 가질 법한 욕망들이다. 우정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전개도 없다. 덴지는 사무라이 소드에게 설득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냥 급소를 찬다. 이게 더 현실적이다.
     
    전투 장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소년만화에서 전투는 여러 라운드로 진행되는 권투 경기처럼 묘사된다. 서로의 능력을 확인하고, 전략을 세우고, 역전하고, 또 역전당하고. 하지만 체인소 맨의 전투는 빠르고 폭력적이다. 마치 서부극의 결투처럼,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능력의 우열보다는 상황, 운, 결단력이 중요하다. 실제 싸움에는 긴 대화나 내적 독백이 없다. 체인소 맨은 그 점을 이해하고 있다.
     
    이런 접근은 일종의 해체다. 에반게리온이 메카 장르를 해체한 것처럼, 체인소 맨은 소년만화를 해체한다. 겉으로는 소년만화의 형식을 빌리지만, 실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우울, 트라우마, 관계, 상실, 작은 행복의 의미 - 이런 주제들을 다룬다. 악마와 전투는 단지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체인소 맨의 핵심을 유지하면서 다른 장르로 옮겨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폭력과 고어가 주는 효과는 사라지겠지만.
     

    능력 시스템에 대하여

    체인소 맨의 능력 시스템은 논리적 일관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천사의 공포가 거미의 공포보다 강하다. 체인소의 공포가 전쟁의 공포보다 강하다. 박쥐 악마는 입에서 레이저를 쏜다. 닭의 공포는 그냥 평범한 닭인데, 해삼과 토마토의 공포는 거대 괴물이다. 파워 스케일링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라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의도적인 선택이다. 체인소 맨의 능력은 사람들의 공포에 기반한다. 그리고 공포는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인식을 따른다. 아사의 말처럼, "악마의 힘은 논리가 아니라 인식에 따라 작동한다." 이건 헌터x헌터나 주술회전 같은 작품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이 작품들에서는 능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지, 제약과 서약은 어떻게 설정되는지. 하지만 체인소 맨에서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마키마의 능력을 생각해 보자. 그녀는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존재를 지배할 수 있다. 이 능력의 정확한 작동 방식은 끝까지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마키마의 능력은 그녀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상징한다. 지배, 통제, 위계. 그녀가 원하는 세계관 그 자체다. 능력의 메커니즘보다 그 의미가 훨씬 중요하다. 체인소 맨의 능력들은 캐릭터를 설명하는 은유다. 설명서가 아니다.
     

    속도와 효율성

    체인소 맨은 97화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원피스는 천 화가 넘어가도 계속되고 있고 나루토는 700화를 넘어섰는데 어떻게 100화 안에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첫째, 작가 자체의 스토리 전개 방식이 늘 그래왔고, 둘째,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쳐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품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 혹은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체인소 맨의 모든 장면, 모든 대화, 모든 전투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코미디 장면들조차 캐릭터를 발전시키거나 이후에 전개될 이야기의 복선이 된다. 이런 밀도 높은 서사는 일본 만화보다는 서양 코믹스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마블이나 DC의 이벤트들은 보통 10~20 이슈 정도면 완결되며 길어봐야 50 이슈 정도다. 체인소 맨은 일본 만화의 비주얼 스타일과 서양 코믹스의 서사 효율성을 결합했다고 볼 수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차이점도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만화는 독자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중요한 장면에서 멈춰서 생각할 수 있고, 놓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정해진 속도로 흘러간다. 체인소 맨처럼 미묘한 감정 변화나 상징을 다루는 작품은 만화 형식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아키와 덴지가 사무라이 소드의 급소를 차는 장면 - 만화에서는 그 순간의 의미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애니만 본 사람들이 이 작품을 오해하기 쉬운 것 같다.
     

    캐릭터의 진정성

    체인소 맨의 캐릭터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이 진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소년만화 주인공의 클리셰도 없다. 덴지는 고결한 목표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냥 살고 싶고, 좋은 음식을 먹고 싶고, 여자랑 사귀고 싶어한다. 아주 솔직하다. 16살 소년이 실제로 가질 법한 욕망들이다. 아키는 복수를 원하지만, 동시에 가족을 원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다 점점 마음이 덴지와 파워를 향해 기울지만 "나는 이제 복수를 포기하고 가족을 선택하겠어"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변해간다. 아침 루틴이 바뀌고,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자신이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걱정한다.
     
    히메노는 아키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해"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술에 취해 덴지에게 키스하고, 아키 앞에서 자신을 희생한다. 그녀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마키마는 끝까지 자신이 쓴 가면을 벗지 않는다. 전형적인 소년만화였다면 마지막에 "사실 나는 외로웠어"라며 울부짖는 장면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마키마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끝까지 지배의 악마로 남는다. 이게 더 무섭고, 더 슬프고, 더 진실하다.
     
    이런 캐릭터 묘사 방식은 카타르시스를 거부한다. 관객이 원하는 감정적 해소를 주지 않는다. 히메노는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면 없이 죽는다. 아키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되는 장면 하나 없이 비극으로 치닫는다. 파워는... 파워의 죽음이 그토록 아픈 이유는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야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그녀는 계속 허세를 부렸다. 소년만화의 전형적인 감동 장면은 없다. 그저 날것의 감정만이 있다. 이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체인소 맨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의 의미

    체인소 맨을 "그냥 폭력적이기만 한 만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표면만 본 평가이지 않을까. 체인소 맨에서 묘사하는 폭력과 고어는 장식이 아니다. 필수적인 요소다. 왜? 과장된 폭력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체인소 맨은 본질적으로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캐릭터들은 너무 많은 일을 겪고, 너무 많은 감정을 느끼고, 너무 많이 상처받는다. 만약 이걸 일상물의 톤으로 다뤘다면 관객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폭력은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전기톱으로 악마를 썰고, 피가 사방에 튀고, 몸이 갈라지는 - 이런 장면들은 관객을 이야기에서 떨어져 일정 거리에 두게 한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과장된 픽션이야." 이렇게 안심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감정적인 순간들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고 느꼈다. 우리는 이미 방어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아키가 미래의 악마와 계약하는 장면, 파워가 사라지는 장면, 덴지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 - 이런 순간들은 과장된 폭력 속에서 더 돋보였다.
     
    그리고 폭력 자체가 주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체인소 맨의 세계에서 삶은 덧없고 죽음은 갑작스럽고 무의미하다. 히메노는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사라진다. 아키는 괴물이 되어 죽는다. 이 무상함, 이 허무함을 표현하는 데 폭력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데블 헌터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간다. 덴지가 여자 가슴에 집착하는 것도, 파워가 노벨상을 운운하는 것도, 다 죽음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마치며

    체인소 맨은 소년만화인 동시에 소년만화가 아니다. 배틀물인 동시에 캐릭터 드라마다. 폭력적이면서 감성적이다. 이 모순들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체인소 맨을 싫어하는 건 괜찮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하지만 "설명이 부족하다"거나 "세계관이 약하다"는 비판은 작품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오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인소 맨은 세계관 구축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능력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게 필요 없다고 본 것이다.
     
    천천히 읽고, 다시 읽고, 생각하면서 읽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히메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키의 표정이 언제부터 변했는지, 마키마의 진짜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이 모든 게 페이지 안에 있다. 단지 우리가 찾아야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체인소 맨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독자가 되라고. 후지모토는 우리를 신뢰한다. 우리도 그 신뢰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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