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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베르거 - 콘클라베 (2024)취미/영화 2025. 12. 18. 14:25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 회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콘클라베』는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치 스릴러다. 교황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인다. 콘클라베는 외부와 차단된 채 진행되는 비밀 회의다. 추기경들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TV도 라디오도 볼 수 없고, 인터넷이나 신문 같은 외부 정보로부터 완전히 격리된다. 바티칸은 유리창의 미세한 떨림을 이용한 도청을 막기 위해 첨단 장비까지 동원한다. 투표 결과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검은 연기를, 선출되면 흰 연기를 피워 올려 전 세계에 알린다.
랄프 파인스가 연기하는 로렌스 추기경은 콘클라베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그는 미국의 진보 성향 후보 벨리니(스탠리 투치), 보수적이고 편협한 이탈리아 후보 테데스코(세르지오 카스텔리토), 권력욕이 강한 미국 후보 트렘블레이(존 리스고), 인기를 얻고 있는 나이지리아 후보 아데예미(루시안 음삼바티), 그리고 카불에서 일하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베니테즈(카를로스 디에즈)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콘클라베 규칙상 외부로부터 정보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점점 긴장감이 높아진다. 로렌스는 탐정 역할을 하고 싶지 않지만, 후보들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드러날수록 규칙을 어겨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밀실에서 벌어지는 대화극을 역동적으로 만들었는데 그의 전작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후 그가 잠깐 007 시리즈 감독으로 거론된 것도 이해가 간다. 파인스 외에도 존 리스고의 위압적인 연기, 스탠리 투치의 점차 무너지는 모습, 그리고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연기하는 관찰력 예리한 수녀가 인상적이다. 로셀리니는 몇 장면만 등장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추기경들의 권력 게임
영화는 한 후보가 유력해지면 그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퍼지는 패턴을 반복한다.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추기경들은 혼란에 빠지고 서로를 의심한다. 최초의 흑인 교황 후보였던 아데예미의 성추문 사건은 단순한 개인 스캔들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수녀를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하나의 사건이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끊임없이 반전을 거듭한다. 영화를 보면서 누가 교황이 될지 예측해보기도 했는데 중간쯤 로렌스가 교황이 되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다시 다른 후보로 기울어진다. 결국 아프간에서 온 베니테즈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콘클라베 방식은 민주적으로 보인다. 과반수 이상이 인정할 때까지 반복 투표를 하기 때문에, 소수의 표 차이로 당선되는 것보다 훨씬 정당하다. 소수파들은 소신대로 투표할지 아니면 차악을 선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는 콘클라베 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의 선택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는 시간과 비용 문제로 한 번에 끝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완벽한 성직자는 없다
영화는 결국 추기경도 사람이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어디까지 추문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다. 로렌스도 정의를 위해 옳은 일을 했지만 규율이나 규칙을 어긴 적이 있어서 완벽한 성직자는 아니다. 다른 후보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지만 말이다. 욕심 없어 보였던 급진보 후보 벨리니는 사실 욕심이 있었고, 아프간 추기경 베니테즈도 결국 기회가 오자 거절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다.
영화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콘클라베 기간 내내 수녀들은 추기경들의 시중을 드는 역할, 마치 호텔 직원처럼 방을 정돈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남성만이 사제가 될 수 있고, 교황은 오직 남성만이 될 수 있다는 가톨릭 교회의 오랜 전통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랄프 파인스는 세계에 지친 로렌스 추기경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한다. 그는 교황 선출 과정을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개인적인 신앙의 위기를 겪는다. 상황을 통제하려는 냉철한 표정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연약함,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의 갈등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파인스는 『더 메뉴』에 이어 다시 한번 고립된 공간에서 상황을 통제하는 인물을 연기했고 역시나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보수 진영의 희화화
영화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다루지만, 보수 진영의 대표인 테데스코 추기경은 너무 희화화되어 있다. 그는 과장된 망토를 휘날리며 등장하고, 굵은 시가를 피우며, 『대부』에 나오는 돈 코를레오네의 적대자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만화 같은 캐릭터로는 제대로 된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 역사적이고 거대한 충돌을 그려야 하는데, 보수 진영이 이렇게 단순하게 묘사되니 긴장감이 떨어진다.
진보 진영도 교활하고 냉혹한 모습은 보여주지만 보수 진영과의 균형 있는 대립이 없으니 결국 내용 없는 사무실 정치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는 가톨릭 교회 내부에 있는 복잡한 정치적 입장과 신학적 논쟁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고도 생각한다. 2019년 영화 『두 교황』이 베네딕토 16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의 전환을 다루면서 대립하는 세력들을 생생하게 그려낸 것과 대조적이다. 『콘클라베』는 진보 진영의 시각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긴장감이 다소 약하기도 하다.
결말
교황 즉위식을 앞두고 로렌스는 베니테즈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자궁을 모두 가진 인터섹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베니테즈 본인도 남성으로 알고 살아왔고, 수술을 위한 검사 과정에서 우연히 자궁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자궁 제거 수술을 고민했지만 결국 포기했는데, 로렌스가 이유를 묻자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내가 감히 신의 창조물에 손을 대는 것이 옳은가"라고 대답한다.
이 설정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요소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그것을 옹호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아예 여자가 성전환한 것도 아니고, 평생 남자로 살고 사제와 추기경으로 살았는데 자궁이 있는 간성인 경우라 더 복잡하다. 베니테즈는 남성과 여성의 성징을 모두 가진 자신의 육체를 불완전하거나 오류가 있는 존재로 보지 않고, 온전한 신의 창조물로 받아들였다. 전통적인 가톨릭 교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신의 섭리로 규정해왔지만, 베니테즈의 존재는 그런 획일적인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손대지 않았다는 논리를 타파할 수 없어서 로렌스도 받아들인 것 같다. 결국 신이 그렇게 만들었고 이 자리까지 온 것도 신의 뜻이라는 것이 종교의 논리다. 로렌스는 이 사실을 베니테즈에게만 듣고 다른 추기경들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로렌스도 굳이 떠들지 않을 테니 비밀은 영원히 묻힐 것이다. 이 결말은 개봉 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일부 보수적인 관객들은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라며 비난했다.
느린 변화의 방향
베니테즈의 정체성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변화의 속도보다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만약 베니테즈의 정체성을 공개했다면 변화는 급격하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가톨릭에게 이런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내부 반발과 혼란을 일으키고, 새로운 교황의 리더십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느리더라도 지속 가능한 변화만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 속 거북이다. 로렌스는 연못에서 나가려는 거북이를 발견하고 다시 연못으로 돌려보낸다. 거북이는 느리게 걷지만 결국 목표한 곳으로 간다. 이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로렌스가 거북이를 들어서 목적지인 연못으로 보내주는 것은 변화가 깨어있는 소수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으며, 그 작은 움직임이 결국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물론 거북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물속과 땅 위에서 모두 생활 가능한 거북이를 통해 베니테즈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해석, 로렌스가 연못에서 나가려는 거북이를 다시 연못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을 통해 교황청의 일부가 되어 나가지 못하는 로렌스를 보여준다는 해석도 있다.
흥미로운 장르 영화
『콘클라베』는 기본적으로 잘 읽히는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대중 스릴러를 쓰는 작가이고, 이 영화도 그런 장르의 특성을 잘 살렸다. 높은 볼륨의 음악, 관객을 만족시키는 반전들, 그리고 악당의 불길한 전자담배 흡연 같은 요소들이 이것을 보여준다. 요즘 극장에서 이런 수준 높은 스릴러를 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환영할 만한 작품이다.
영화의 약점도 분명하다. 일부 관객들은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과정과 추기경들의 심리 묘사는 섬세하지만, 교황 후보가 결정되고 당선되는 과정은 다소 급작스럽다고 느낀다. 또한 베니테즈의 인터섹스 설정이 메시지를 위해 너무 억지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종교적 주제나 교회의 현대 사회 위치에 대한 탐구도 두 번의 연설 정도로 끝나서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영화는 흥미로운 주제들을 건드리지만 깊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흑인 교황이 LGBTQ+ 공동체에 대해 혐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고대 종교를 얼마나 현대화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제기되지만 충분히 탐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클라베』는 탄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한 매력적인 정치 스릴러다. 미장센도 훌륭하고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은 폴커 베르텔만의 음악도 분위기를 잘 살린다. 교황 선출이라는 독특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권력 암투는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고, 종교가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정치 스릴러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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