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댜오이난 - 백일염화 (2014)취미/영화 2025. 12. 18. 14:14

얼어붙은 누아르
댜오이난 감독의 『백일염화』는 중국 최북단 흑룡강성 하얼빈을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다. 1999년, 15개의 탄광에서 토막 난 시신이 발견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피해자는 량즈쥔이라는 평범한 노동자였고, 그의 아내 우즈정은 세탁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형사 장즈리는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을 벌이게 되고, 이 사건으로 동료 두 명이 사망하면서 그는 깊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5년 후, 장즈리는 경찰을 그만두고 술에 의지하며 보안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러던 중 과거와 동일한 수법의 연쇄 살인 사건이 다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의 모든 피해자가 우즈정과 관계가 있었다.
레이먼드 챈들러와 제임스 M. 케인의 정신이 흐르는 이 영화는 전형적인 누아르 구조를 따른다. 영웅도 악당도 없고 모두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댜오이난은 데뷔작 『Uniform』에서 이미 누아르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가족의 세탁소 사업을 하다가 경찰 행세를 하는 인물이었다. 『백일염화』에서 세탁소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탁소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곳이지만, 동시에 범죄의 흔적을 지우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즈정이 일하는 세탁소 앞 가로수 아래 남편의 유골을 묻어두는 장면은 이런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즈리는 손님을 가장해 우즈정에게 접근하기 시작하고 점차 그녀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끔 유도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시간을 끈다. 사실은 죽은 줄 알았던 량즈쥔이 살아있었고 그는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우즈정 주변의 남자들을 살해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경찰이 량즈쥔을 사살한 후 장즈리는 또 다른 진실을 발견한다. 5년 전 량즈쥔으로 위장했던 최초의 시신은 세탁소 손님이었던 리란칭이라는 남자였고 우즈정이 그를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추위와 빈곤의 이미지
하얼빈의 매서운 추위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감각이다. 경제 개발이 덜 된 공업 도시의 모습은 강추위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암울한 정서를 자아낸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나이트클럽, 낡은 세탁소, 얼어붙은 스케이트장 같은 공간들은 마치 흑백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색채가 절제되어 있다. 미술감독 류창은 노동자 계급의 절망을 보여주는 허름한 바, 경찰서, 각종 구멍가게들을 훌륭하게 재현했다. 촬영감독 둥진송은 추적 장면에서 인상적인 롱 테이크를 사용하는데, 1999년에서 2004년로 넘어가는 장면의 트래킹 샷이 특히 눈에 띈다.
디아오이난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템포를 늦췄다. 연쇄 살인과 엽기적인 토막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지루할 만큼 천천히 진행된다. 하지만 이런 느린 진행이 오히려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러닝타임 내내 암울한 분위기가 끊기지 않으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불안감을 느끼게된다. 영화 초반의 총격전 장면은 이런 연출을 잘 보여준다. 카메라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롱 샷으로 상황을 담담하게 지켜본다. 형사가 실수로 총을 떨어뜨리고, 용의자가 그것을 주워 형사들에게 발포한다. 순식간에 두 명의 동료가 쓰러지고 장즈리가 용의자들을 제압한다. 이 모든 일이 감정적으로 과장되는 일 없이 건조하게 펼쳐진다.
지아장커의 『천주정』처럼 『백일염화』도 명시적으로는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인간의 생명이 천연자원만큼이나 소모품 취급받는 중국의 어두운 초상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다. 모든 이가 위험한 땅 위에 서 있고, 피로 얼룩진 세계에서 살아간다. 영화평론가 스콧 파운다스가 지적했듯이, 누군가 장즈리에게 "잊어버려, 장. 여기는 중국이야"라고 말하는 장면만 빠졌을 뿐이다. 이런 사회적 맥락이 이 영화를 단순한 장르 영화 이상으로 만들게 되는 것 같다.
팜므파탈의 얼굴
계륜미가 연기하는 우즈정은 전형적인 팜므파탈이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1940년대 할리우드 버전이라면 라나 터너나 아이다 루피노가 연기했을 법한 역할이지만 계륜미는 우즈정을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연기한다. 그녀의 공허한 표정은 악한 의도가 없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고통을 견디려는 방어기제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우즈정과 량즈쥔의 관계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볼 수도 있고 병적인 집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녀는 세탁소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장즈리와의 관계에서도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장즈리와 우즈정의 관계는 꽤 복잡하다. 장즈리는 수사를 위해 그녀에게 접근했지만 점차 진심으로 끌린다. 그가 우즈정을 스케이트장으로 데려가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기도 했다. 이전 피해자들도 스케이트를 신은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장즈리는 일부러 그녀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랴오판은 이런 모호한 감정선을 진중하게 연기해 2014년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의 연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영화 말미에 찾아온다.
수사 종결을 기념하는 회식 자리에서 장즈리는 동료들과 담담하게 술을 마시다가, 홀로 옥상으로 올라가 불꽃놀이를 터뜨린다. 구속되어 가는 우즈정을 향해 쏘아 올린 이 백일염화는 작별 인사인지, 감사의 표시인지, 아니면 조롱인지 알 수 없다. 그 직전 장즈리는 나이트클럽 무대 위에서 격렬하게 춤을 춘다. 이 장면은 캐롤 리드의 『제3의 사나이』에 나오는 관람차 장면을 연상시킨다. 두 장면 모두 주인공이 진실을 마주한 후 느끼는 배신감과 허무함을 표현한다.
반전의 허무함
영화의 구조는 여러 겹의 진실이 겹쳐져 있다. 첫 번째 진실은 량즈쥔이 죽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진실은 그가 살아있다는 것이며, 세 번째 진실은 우즈정이 리란칭을 죽였다는 것이다. 각각의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영화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는 의외로 평범하다. 우즈정은 값비싼 가죽 재킷을 망가뜨렸고, 배상할 돈이 없자 리란칭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반항하다가 실수로 그를 죽였다. 량즈쥔은 아내를 위해 시신을 처리했고, 그 후 아내 주변의 남자들을 계속 살해했다.
악행의 근거가 지극히 평범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거창한 음모나 복잡한 계획이 아니라, 한 여성이 겪은 성폭력과 그녀를 보호하려는 남편의 왜곡된 사랑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것은 누아르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과도한 투사는 개인적 실망으로 이어지고, 그 실망은 배신감처럼 느껴진다. 장즈리가 진실을 알았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텅 빈 댄스 플로어에서 홀로 경련하듯 춤을 추는 것뿐이었다. 그의 몸은 이 나쁜 감정들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일부 사람들은 더 복잡하게 해석을 하기도 한다. 세탁소 주인 롱롱이 사실은 량즈쥔이고, 경찰이 사살한 남자는 또 다른 대역이라는 주장이다. 총격전 직전 그 남자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손 신호를 보냈고, 롱롱이 우즈정에게 빨간 스카프를 주려 했던 것이 최후의 계획이었으며, 우즈정은 남편을 위해 기꺼이 감옥에 간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영화가 제시하는 명확한 증거보다는 관객의 상상에 가깝다. 손 신호는 단순히 가위바위보를 혼자 하는 모습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 순간 그가 느끼는 긴장과 패배감을 표현한 것이다.
한낮의 불꽃놀이
영화의 제목 '백일염화'는 한낮의 불꽃놀이를 의미하며, 극중 나이트클럽의 이름이기도 하다. 밤이라면 화려했을 불꽃놀이가 대낮에는 거의 보이지 않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댜오이난 감독은 이 이미지를 통해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한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불꽃이 있었고, 작지만 하늘에 상처를 냈다. 우즈정의 무표정한 얼굴에 스치는 안도감, 장즈리의 격렬한 춤, 그리고 한낮의 불꽃놀이는 모두 삶의 허무함과 구원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우즈정은 현장 검증을 마치고 구속된다. 그녀가 타고 가는 차 주변으로 수많은 폭죽들이 터진다. 카메라는 옥상에 선 장즈리를 보여주지 않지만, 우리는 그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자신이 구한 가장 큰 폭죽을 쏘아 올렸다. 이 장면은 관람차에서 장즈리가 우즈정에게 백일염화 클럽을 가리켰던 장면과 연결된다. 그때 그는 대낮에도 불꽃놀이를 한다는 사실을 신기해했다. 이제 그 자신이 대낮에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댜오이난은 『백일염화』를 통해 자신의 영화 세계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전작 『Uniform』과 『Night Train』에서 보여준 장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이번 작품에서는 더 세련되고 통제된 형태로 나타난다. 장르 영화와 예술 영화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 역시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아주 대중적이지도 않고 스토리 전개가 느리며 반전이라고 할 것도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하지만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 하얼빈의 강추위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비주얼, 그리고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담아낸 연출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이것은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수 있는 영화지만 독특한 색깔을 가진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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