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미야자키 하야오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023)
    취미/영화 2025. 12. 13. 15:29

     

    들어가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약간 놀랐다.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지 10년이 넘었고 이미 여든을 넘긴 감독이 다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봉 전 일본에서는 포스터 한 장, 예고편 하나 없이 극장에 걸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영화관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 전까지도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제목이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라는 정도,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정도만 알았을 뿐이다.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나는 여러 세계를 오갔다. 전쟁의 참혹함이 배경에 깔린 현실 세계, 탑 아래 펼쳐진 환상의 세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창작자의 내면 세계가 쉴틈없이 눈 앞에서 몰아쳤다. 모든 장면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던 건 이 영화가 한 예술가의 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타는 병원에서 시작된 이야기

    영화는 폭격과 화재로 시작한다. 마히토의 어머니가 일하던 병원에 불이 나고 마히토는 불길 속을 헤치며 어머니를 찾아 달려가지만 병원은 눈 앞에서 무너지고 어머니는 그 안에서 죽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전쟁의 그림자 아래서 살았고 자신의 가족이 전쟁 수혜자였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왔던 사람이다. 『바람이 분다에서도 그 고민이 드러났지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히토는 1년 후 아버지와 함께 시골로 이사를 가고 아버지는 전쟁용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며 전쟁으로 돈을 번다. 그리고 마히토의 이모이자 새 어머니가 된 나츠코와 결혼한다. 처남과 처제가 결혼한다는 것도 그렇고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는 것도 다소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이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우리에게 보여준다. (거의 보라고 들이미는 수준에 가깝긴 하다.)

     

    마히토라는 소년은 지금까지 지브리 영화에 등장했던 주인공들과 다르다. 치히로나 소피처럼 순수하고 선한 아이가 아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잠잠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있고, 폭력적이며, 자해까지 한다. 전학 간 학교에서 싸우고, 스스로 돌로 머리를 쳐서 상처를 내기까지 한다. 이런 어두운 모습은 전쟁이라는 환경이 어린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미야자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가리와 탑

    어느 날 마히토 앞에 이상한 왜가리가 나타난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새지만 그 안에는 못생긴 중년 남자가 들어있다. 이 기묘한 설정이 영화 내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가리는 마히토에게 어머니가 탑 안에서 살아있다고 말하며 그를 유혹하는데 처음에는 마히토가 거부하지만 결국 나츠코(어머니의 동생이자 마히토의 새어머니)마저 탑 안으로 사라지자 그도 따라 들어가게 된다.

     

    탑 아래 세계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모든 판타지 세계의 집합처럼 느껴졌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이세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마법, 『원령공주의 자연 정령들, 『천공의 성 라퓨타의 고대 문명이 모두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와라와라라는 작은 흰 정령들은 코다마를 닮았고 거대한 펠리컨들은 공포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슬펐으며 앵무새들은 토토로의 어두운 버전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세계가 단순히 예전 작품들의 오마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탑 아래 세계는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고 그 세계를 만든 증조할아버지는 후계자를 찾고 있었다. 이 설정을 보면서 이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이야기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증조할아버지는 미야자키이고 탑 아래 세계는 그가 평생 만들어온 작품 세계이며 마히토는 그 세계를 물려받을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히미와 불

    탑 아래에서 마히토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히미를 만난다. 그녀는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펠리컨들과 싸우고 와라와라라는 새 생명들을 지킨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지지만 히미는 마히토의 어머니, 즉 불에 타 죽은 그 여성이 젊었을 때의 모습이다. 히미는 자신이 미래에 불에 타 죽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을 무기로 사용해 생명을 지킨다. 마히토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아이답게 잼을 듬뿍 발라 빵을 먹으며 행복해한다.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고 슬펐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가면서 마히토에게 하는 말, "불은 무섭지 않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는 아직도 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이 장면을 통해 미야자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끝을 맞이한다는 걸 안다. 창작자로서의 삶도, 육체적인 생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끝을 알면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 자신이 선택한 삶을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히미를 통해 전달되는 것 같았다.

     

    펠리컨과 앵무새

    탑 아래 세계에는 여러 생명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펠리컨과 앵무새가 기억에 남는다. 펠리컨들은 와라와라를 잡아먹는데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은 "바다에 물고기가 없어서"라고 답한다. 환경이 변했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잡아먹는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게 정당한가? 펠리컨은 원래 물고기를 먹는 새인데 이제는 인간이 될 영혼들을 잡아먹는다. 이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고 합리화할 수 없는 악이라고 생각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미야자키가 전쟁과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일본은 전쟁을 합리화했다. 생존을 위해, 아시아를 서구로부터 지키기 위해 등 온갖 이유를 댔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한 일은 무고한 생명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펠리컨이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은 전범들이 지금도 역사를 왜곡하고 변명하는 모습과 겹쳐 보였다.

     

    앵무새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같은 말만 반복하고, 탑의 세계를 장악하려 하며, 진실을 말하려는 자들을 공격한다. 이건 우매한 대중, 혹은 역사를 외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미야자키가 평생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예쁜 애니메이션"으로만 소비했을 것이다. 그 답답함과 분노가 앵무새라는 캐릭터에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

     

    증조할아버지와 선택

    탑의 중심부에서 마히토는 증조할아버지를 만난다. 그는 악의 없는 13개의 돌로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 늙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히토에게 이 세계를 이어받으라고 제안한다. 순수하고 악의 없는 돌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라고 말이다. 이 장면에서 13개의 돌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편 애니메이션 13편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을 때 소름이 돋았다. 증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자신이고, 이 제안은 후계자를 찾는 것이며, 마히토는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미야자키는 평생 작품을 만들어왔고, 그 작품들이 쌓여 하나의 세계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 그 세계를 혼자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누군가 이어받아야 한다.

     

    하지만 마히토는 거절한다. 자신에게는 악의가 있고, 순수하지 못하며, 이 세계를 이어갈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츠코와 함께 현실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 선택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마히토는 탑 아래의 아름다운 세계를 거부하고,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곳이 자신이 살아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마히토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축복을 내린다. 세계는 무너지고, 탑은 붕괴되며, 모두가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미야자키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명확해졌다. 그는 자신의 유산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음 세대가 자신과 같은 길을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이 만든 세계를 무너뜨리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제목의 의미

    영화 내내 등장하는 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마히토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마히토는 이 책을 읽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폭력적이고 화가 난 소년이 점차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나츠코를 진심으로 걱정하게 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게 된다.

     

    요시노 겐자부로의 원작 소설은 어린 소년이 삼촌과 주고받는 서신을 통해 도덕적 교훈을 배우는 이야기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고, 그 영향을 받아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그는 이 책의 제목을 빌려 다음 세대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미야자키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선택의 자유를 준다. 마히토가 탑의 세계를 거부한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이 영화가,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인 것 같다.

     

    마치며

    극장을 나서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이면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영화다. 전쟁에 대한 비판, 유산에 대한 고민, 선택의 자유, 죽음과 삶에 대한 성찰, 이 모든 것이 두 시간 안에 담겨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러 번 은퇴를 선언했고, 그때마다 복귀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정말 마지막 작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가 또 다른 영화를 만든다 해도, 이 영화는 그의 유언처럼 남을 것이다. 자신이 평생 만들어온 세계를 내려놓고, 다음 세대에게 그들만의 선택을 하라고 말하는 노장인의 마지막 인사처럼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들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천공의 성 라퓨타'. 그 작품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어떻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수렴되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길을 개척할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살았고, 후회 없이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제 그 세계를 내려놓을 준비가 됐다. 히미가 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미야자키도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가치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만든 세계는 충분히 가치 있었고, 당신은 훌륭하게 살았다고 말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