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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스 폰 트리에 - 님포매니악 1·2 (2013)
    취미/영화 2025. 12. 12. 21:18

     
     

    들어가며

    '님포매니악'이라는 제목만 보고 이 영화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포스터의 샬롯 갱스부르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종류의 영화인지 짐작하고, 보지 않기로 결정하거나 혹은 다른 기대를 품고 보기 시작할 것이다. 5시간이 넘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라스 폰 트리에는 사람들이 가진 편견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오히려 그걸 이용해 시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그빌'에서 인간의 위선을 해부했던 라스 폰 트리에는 이번에는 욕망과 외로움이라는 주제로 돌아왔다. 그런데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도그빌'이 우화였다면 '님포매니악'은 고백이고, '도그빌'이 공동체의 악을 다뤘다면 '님포매니악'은 개인의 공허함을 파고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우리가 섹스와 여성, 욕망과 도덕에 대해 갖고 있는 이중 잣대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이야기꾼과 청자

    영화는 쓰러져 있는 조를 셀리그만이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차를 끓여주고, 왜 길바닥에 누워있었는지 묻는다. 조는 대답 대신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경험한 모든 성적 편력을. 이 구조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조가 말하고, 셀리그만이 듣고, 때때로 해석하고, 다시 조가 이어간다.
     
    셀리그만은 스스로를 무성애자라고 소개하며, 섹스에 전혀 흥미가 없다고 말한다. 즉, 조의 이야기를 섹슈얼하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만약 다른 남자였다면 이 대화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의 고백은 유혹이 되거나 포르노가 되거나 혹은 판단의 대상이 되었겠지만, 셀리그만은 그녀의 이야기를 마치 문학작품처럼 분석한다.
     
    그는 조가 기차에서 남자들과 내기를 했던 이야기를 하면 낚시의 님프 미끼를 떠올리고, 제롬과 처음 잤던 횟수를 들으면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하고, 조가 동시에 여러 남자를 만났던 시절을 들으면 바흐의 폴리포니 음악 이론을 꺼낸다. 처음에는 이게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이 남자는 대체 뭘 하는 걸까? 하지만 점점 이해하게 된다. 셀리그만은 조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회가 수치스럽다고, 부도덕하다고 낙인찍은 그녀의 경험들을 하나의 예술로, 탐구할 가치가 있는 현상으로 승격시키고 있는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

    Vol.1을 보면서 조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왜 이렇게 많은 남자들과 잤을까? 단순한 성욕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영화가 진행되면서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는 채우려 하고 있었다.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허함을. 제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 안의 모든 구멍을 채워달라."
     
    우리는 모두 비슷한 갈증을 갖고 있지 않나.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 아무리 채워도 다시 텅 비어버리는 그 감각. 어떤 사람은 음식으로, 어떤 사람은 쇼핑으로, 어떤 사람은 일중독으로 그걸 해소하려 하는데 조에게는 섹스가 그 방법이었다. 하루에 일곱여덟 명의 남자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노동이고, 중독이고, 필사적인 생존 방식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조를 단순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능동적이었고, 때로는 잔인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유부남을 유혹해 가정을 파괴했고, 자신의 아이를 버렸으며, 질투심에 눈이 멀어 제롬을 죽이려 했다. 조는 복잡한 인물이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고, 약자이면서 강자이고, 솔직하면서 기만적이다. 이 모순이 그녀를 현실적으로 만든다.
     

    여자라는 이유

    셀리그만은 이렇게 되묻는다. "만약 당신이 남자였다면?" 조의 모든 행동은, 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거나 훨씬 덜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루에 여러 명과 섹스하는 남자는 바람둥이나 플레이보이로 불리며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여자는 창녀가 된다. 아이를 버리고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남자는 단순히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여자가 그러면 어머니의 본능을 거스른 괴물이 된다.
     
    영화는 계속해서 이 이중잣대를 건드린다. 조가 기차에서 남자들과 내기를 할 때, 그녀와 친구는 웃으며 점수를 매긴다. 누가 더 많은 남자와 잤나. 이 장면을 남자 둘이 하는 걸로 상상해보라. 영화의 톤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혹은 조가 아이를 버리고 제롬을 선택하는 장면을 보자. 하지만 제롬도 마찬가지로 가족을 버리고 조를 선택했다. 누가 더 나쁜가? 왜 우리는 조를 더 가혹하게 판단하는가?
     
    그래서 조는 스스로를 '섹스 중독자'가 아니라 '님포매니악'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여성에게만 적용된다. 남성의 색정증은 사티리어시스라고 따로 부른다. 조는 자신이 여성으로서 겪는 특별한 낙인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낙인을 거부하는 대신 받아들이고,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든다. "나는 님포매니악이다." 이건 수치가 아니라 선언이다.
     

    Vol.2의 어둠

    Vol.1이 상대적으로 밝고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었다면, Vol.2는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진다. 조는 불감증에 빠지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점점 더 극단적인 방법을 찾는다. 폭력적인 섹스, 학대, 고통. 그녀가 K라는 남자에게 맞으며 쾌락을 느끼는 장면은 솔직히 보기 힘들었다. 낙태 장면은 더욱 끔찍하다. 라스 폰 트리에는 카메라를 절대 돌리지 않는다. 모든 걸 보여준다.
     
    이 잔혹함이 필요했을까?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눈을 감고 싶었다. 너무 직접적이고, 너무 폭력적이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한다. 라스 폰 트리에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줄 생각이 없다. 그는 조의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 중독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욕망이 어떻게 사람을 무너뜨리는지,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조가 아이를 버리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들은 이런 순간을 감동적으로 포장한다. 어머니의 눈물, 아이를 향한 마지막 시선, 슬픈 음악. 하지만 '님포매니악'은 그렇지 않다. 조는 냉정하다. 아이보다 자신의 욕망이 중요했고, 그걸 인정한다. 이게 충격적인 이유는 우리가 어머니에게 기대하는 것, 여성에게 요구하는 희생정신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신뢰의 파괴

    5시간 동안 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셀리그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조를 판단하지 않았고, 이해하려 했으며, 그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조가 느끼는 죄책감을 덜어주려 했고, 그녀의 경험에 가치를 부여했다. 처음으로 조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걸 믿었다. 변화를 결심했다. 섹스 없이 살아보겠다고. 셀리그만과의 우정이 그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배신이 더 아프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조가 잠든 후 셀리그만이 돌아오고 그녀를 강간하려 한다. "하지만 당신은 수천 명의 남자와 잤잖아요." 이 한 문장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셀리그만은 결국 조를 존중하지 않았다. 5시간 동안의 경청은 진짜 이해가 아니었다. 그는 조의 과거를 그녀의 현재 의사와 동일시했다. 과거에 많은 남자와 잤으니 지금 자신과도 잘 거라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착각했다.
     
    이 장면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다.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 충격을 위한 충격이라는 비판을 이해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결말은 필연적이었다. 라스 폰 트리에는 동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의 과거는 그녀의 현재 선택과 무관하다. 수천 명과 잤든, 한 명과 잤든, 지금 이 순간 원하지 않으면 그건 강간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혹은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는 총소리가 울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조가 어디로 갔는지, 셀리그만이 죽었는지 다쳤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조의 마지막 희망은 사라졌다.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 섹스 없이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모두 무너져버렸다.
     

    마치며

    '님포매니악'을 보는 내내 불편했다. 섹스 장면들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이사이 드러나는 진실 때문에. 조가 느끼는 외로움이 너무 익숙했고, 셀리그만의 배신이 너무 흔한 일이었고, 사회가 조에게 가하는 이중 잣대가 너무 명백했다. 이 영화는 섹스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얼마나 쉽게 타인을 판단하는지, 그리고 우리 안의 공허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관한 영화다.
     
    조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자신의 고통에,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서 정직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여자'의 가면을 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냈다.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용기가 그녀를 더 고립시켰다는 게 슬프다.
     
    라스 폰 트리에는 답을 주지 않는다. '도그빌'에서도 그랬듯이, 그는 질문만 던진다. 우리 안의 구멍을 정말 채울 수 있는가? 타인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가? 판단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이 질문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어쩌면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불편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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